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다사자 작전 (문단 편집) == 최종 결정 == 1940년 8월 1일에 총통지령 제17호가 발표되었다. 여기서 히틀러는 나치 독일 공군에게 주로 작전지시를 내렸다. 영국을 최종 정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확립할 목적으로 공중전과 해상전을 강화하는 것이 기본 목적이었으나 앞서 언급했듯이 나치 독일 해군의 능력이 모자라므로 나치 독일 공군에게 부여된 짐이 많았다. * 1940년 8월 5일 이후에는 영국 해협의 날씨가 안좋은 날이 많아져서 상륙작전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최단시간안에 공군 전투력 전체를 동원해서 영국 공군을 개박살낸다. * 영국 공군이 무력화되면 항구와 영국군 보급품을 목표로 삼아서 공격하지만 항구 자체는 상륙작전에 이용이 가능한 경우는 사용가능하게 남겨놓아야 한다. * 상륙작전 지원을 대비하기 위해서 충분한 전력을 예비병력으로 확보해야 하며 영국 공군의 테러방식 폭격에 대응하는 것도 히틀러의 허가 없이는 영국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 * 적 군함과 상선에 대한 폭격은 아주 유리하거나 먹음직한 목표가 나오지 않는 한 줄어들 수 있다. 종합하자면 나치 독일 공군이 엄청난 폭격을 먼저 가해서 바다사자 작전을 실시 가능할 수준으로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그 후에 바다사자 작전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치 독일 해군은 자신의 능력 안에서 상륙작전 개시 전에는 작전 준비를 진행하고 요청이 있을 경우에 한해 나치 독일 공군을 적절하게 도와주면 끝이며 나치 독일 육군은 상륙작전 개시 전까지 상륙군을 마련해놓고 승선 예정지역에 대기시키면 된다. 이렇게 나치 독일 공군이 작전의 초기 주역이 된 이유는 [[헤르만 괴링]]이 원인이었다. 바다사자 작전보다는 해당 작전을 실시하기 위한 전제 조건 확립이 더 중요해진 상황에서 작전의 주역이 나치 독일 공군으로 넘어왔으며 프랑스 침공등 이전의 전투에서 발생한 성과가 나름대로 정확하게 정리되어 보고가 되었고 1940년 7월부터 시작된 [[영국 본토 항공전]]의 초기 성과도 스스로 파악하기에는 나쁘지는 않았던 것이다. 괴링의 입장에서도 나치 독일 공군이 주역이 되며 자신의 공군의 능력도 좋다면 앞으로 나서지 않을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결국 앞서 언급한 여러가지 자료가 말해주듯이 '우리 공군이 영국 공군과 해군을 격파해주겠다.'라며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선 괴링의 태도에 바다사자 작전을 연기하고 싶어했던 나치 독일 해군과 독소전쟁 준비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던 나치 독일 육군의 의향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영국 본토 상륙작전이 아직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나치 독일 공군이 작전을 진행하는 동안 상륙작전 준비를 해놓았다가 영국 공군이 무력화되고 영국 해군이 상륙작전 방해를 못 할 수준으로 전락해버리는 등 조건이 좋아지면 바다사자 작전을 실시하면 되며 그렇지 않고 사실상 나치 독일 공군이 실패하면 바다사자 작전을 실시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전투에서 독일 공군의 활약상을 생각하면 나치 독일 공군이 작전을 말아먹는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이에 따라 이미 1940년 7월부터 시작된 [[영국 본토 항공전]]이 엄청나게 확대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